백혜경 『남자친구 있음』 1~4권 (미완)

 2017년 04월 07일 작성

읽는 내내 느낀 건 "얘들이 왜 이렇게 불쌍하지?" ㅠㅠㅠㅠ "주인공의 아이는 19살, 20살, 20대 초반인데 누군가는 평생 겪지 않을 극심한 심리적 고통을 겪네요. 부모를 모시고 인생 최대의 고민이라 해도 대학입시나 취업(큰 고민은 아니지만), 또는 연애 문제가 되어야 할 나이에 어른들도 감당하기 힘든 인생의 어려움과 맞부딪치며 살아가는 주인공들.연쇄 방화, 아동학대, 살인, 처남매제 등 자극적인 코드가 들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만화는 비윤리적인 느낌이 들지 않습니다. 비윤리적이어서 싸구려라고 하기에는 주인공들의 삶의 무게가 가볍지 않거든요. 덧붙여, 주인공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도 흥미 본위가 아닙니다. 어려운 상황에서 주인공을 내몬 것은 작가지만, 진흙탕에서 뒹굴면서도 어떻게든 살아가기 위해 애쓰는 주인공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이 느껴져요. 아니면 온갖 끈질긴 감정과 고통스러운 삶 속에서도 몸부림치는 주인공들이 이렇게 예뻐 보일 수가 없어요.

하루에 한 번 서로를 닦지 않으면 혓바늘이 돋는 현실 남매 효주와 건타. 예쁘고 잘생긴 얼굴이며 효주는 전교 1등 수재, 켄타는 운동수재로 교내에서 유명한 유명인사이자 인기인이다. 남이 보기엔 예쁜 효주가 동성에게만 인기가 있는 게 이 남매의 가장 큰 미스터리. 하지만 사실 이 남매에겐 그보다 더 큰 비밀이 있는데, 그건 바로 두 사람의 피가 전혀 섞이지 않은 남남이라는 거다.친어머니의 집착과 학대로 숨막힌 생활을 한 효주에게 사랑이 넘치는 보통집 건타의 집은 동화 속 세상과도 같았다. 건타의 집에 그 작은 몸을 눕힐 때 비로소 효주는 숨쉬며 살 수 있게 된다.개구쟁이 악동, 인생이 지루했던 켄타에게 어른스러운 표정을 짓는 효주는 닮고 싶은 멋진 오빠였다. 형이 누나라는 사실을 알고도 효주에 대한 건타의 마음은 변함없다. 마음은 쑥쑥 크지만 깨지기 쉬운 유리 같은 효주가 다칠까봐 징그럽게 듣지 않는 동생의 탈을 쓰고 곁을 지키고 있다.그런 두 사람 사이에 효주 같은 어둠을 지닌 옛 아역 스타 수염이 끼어들고, 겐타가 지키려 애썼던 경계가 허물어지고. 효주의 어머니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연쇄 방화범이 효주에게 집착해 효주를 누르고, 켄타가 지키려던 효주의 어둠이 서서히 떠오른다.

작품 내용을 알기 전에는 무슨 말을 하는 거지? 라고 생각했는데, 읽어보니 굉장히 재미있는 인물관계도. 출처 http://romance_nine.blog.me 남남깨미?! 그게 뭐야!! 그런게 어딨어요!!! 만나기만 해도 살기를 감추지 않고 효주를 사이에 두고 주먹이 오가는 건태와 수엽의 관계가 참 바람직해요. 순정만화나 소설에 BL코드를 넣는 몇몇 작가들 때문에 짜증이 나는데, <남자친구 있음>은 철저하게 효주 혼자만 바라보는 켄타와 이츠키바 덕분에 마음이 채워집니다. 주변상황은 결코 흐뭇하지만 연재 초기 과연 남주가 건투를 할지 수염인지 독자들을 헷갈리게 했던 것 같은데 수염은 스스로 남주이기를 포기했어요. 효주를 아프게 해서 최악의 방법으로 효주를 버린 거죠. 인물관계도 글귀처럼 빅픽처를 그리는 것 같지만 효주를 떠나는 방식이 도저히 순정만화 남주가 취할 방법이 아니어서 실격! 그와 달리 켄타는 연하남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어요. 아슬아슬하게 지켜지던 남매 경계선이 무너지고 나서 저돌적 순애보란 이런 것이다!를 보여주네요. 한 가지 단점이 있다면 19살 미성년이라는 거... 네?남주가 미성년인 게 뭐가 문제에요? 아니, 정말로 몰라서 묻는거에요?!!

켄타의 눈만큼 작고 연약하고 위태로워 보일 뿐이지만 실은 대담하고 야무진 효주 캐릭터도 좋지만 여조 캐릭터들의 매력도 만만치 않아요.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나염과 시니컬 뷰티 유니스. 효주와는 수엽이나 건태를 사이에 두고 있어 얽히고설킨 관계가 있는데 이들이 집중하는 것은 수엽이나 건태가 아니라는 점이 마음에 듭니다. 막장 드라마에 항상 나오는 여주인과 악녀녀녀죠의 관계 있잖아요~ 여주인공만 사라지면 남자가 자기 것이 되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 그런 단선적인 시각을 가진 여주인공이 아니라는 게 색다릅니다. 철저하게 내가 원하는 남자의 심리만 공격하고 있는데 제발 끝까지 그렇게 해줬으면 좋겠어요.

'남자친구 있음'은 원래 작가가 구상하던 '남자친구 없음'의 프리퀄 작품이래요. 그러니까 '남자친구 없음'이 뒷이야기라는 건데, 뒷이야기 제목은 조금 불안하네요. 원래 굉장히 어두운 엔딩으로 구상했는데 주위에서 미쳤다는 반응을 보여서 수정을 했대요. 작가님을 믿어보세요~!!

이 장면을 명장면으로 꼽았는데(수염이 떡이 되도록 굽힌 뒤 깜짝 놀라 달려온 효주에게 건태가 뱉은 고백) 하지만 내가 가장 감동한 명장면은 이거.
친어머니의 학대와 방화사건 호랑이 말로 밤마다 악몽에 시달리는 효주.곤타의 집에 입양돼 안정적인 생활을 하지만 그래도 악몽을 꾸면 이불에 실수를 하는데.
놀란 효주에게 무심코 자기 바지를 벗고 축축한 이불 위에서 대신 자기는 탄다.머리를 빡빡 깎은 꼬마가 이렇게 예뻐도 되는 거야?ㅠㅠ켄타의 부모님이 아무리 좋은 분이라도 효도에게는 남이었습니다. 민폐를 끼치고 미움을 받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떨 수밖에 없는 효주를 정말 태연하게 안심시켜 주는 것은 타효주만이 아는 날개 없는 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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